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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Willy Ronis' 프랑스의 사진작가

by OomPang 2023.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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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y Ronis

1910-2009 프랑스

프랑스의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로베르 두아노 등과 동시대에 활동하며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시적 이미지로 사진에 담아 사진을 단순한 기록을 위한 도구가 아닌 예술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1910년 프랑스 파리에서 제정 러시아의 포그롬(유대인 대학살)으로부터 탈출한 유대인 난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우크라이나 오데사 출신의 아버지는 파리에서 여권사진이나 아기들 스냅 사진을 주로 찍는 사진관을 운영하였으며, 리투아니아 출신의 어머니는 피아노 교사였다. 어려서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며 작곡가를 꿈꾸었으나, 1932년 군 복무를 마친 뒤 아버지가 병이 들자 사진관 운영을 이어받았다.

어려서부터 사진과 친숙하였으나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다가 앤설 애덤스(Ansel Adams)와 앨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의 사진을 접하면서 사진 매체의 풍부한 잠재력에 눈을 뜨게 되었고, 1936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사진관을 정리하고 프리랜서로 나섰다. 이 무렵에 훗날 매그넘을 창시한 로버트 카파(Robert Capa)·데이비드 시무어(David Seymour)와 어울렸고, 로베르 두아노(Robert Doisneau)·브라사이(Brassai)와 라포(Rapho)라는 에이전시에서 함께 일하였다.

1938년 시트로엥 자동차 공장의 파업을 담은 연작 사진을 찍으면서 사회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고, 보도·인물·광고·패션 등 거의 모든 장르를 넘나들며 뛰어난 사진을 남겼다. 1947년 코닥 최고상을 받았고, 1951년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브라사이·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로베르 두아노·이지스(Izis) 등 프랑스의 대표적 사진가들과 함께 5인의 사진전을 열어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1953년부터 프랑스 사진가로는 처음으로 시사 화보잡지 《라이프 Life》의 사진기자가 되었으며, 1957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금상을 수상하였다. 이후로도 활발하게 활동하여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으며, 프랑스 문화성까지 그의 사진을 소장하려 할 만큼 세계적으로 그의 사진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자 자신의 모든 필름을 파리시에 기증하였다.

2001년 지팡이를 짚게 되어 더 이상 카메라를 들고다니지 못하게 될 때까지 사진 작업을 계속하였으며, 사진을 찍지 못하게 된 뒤에는 타센(Taschen) 출판사에서 사진 컨설턴트로 일하였다. 2009년 9월 12일 파리에서 99세로 사망하였다.

그는 "아름다움은 길 위에 있다"며 스스로 '일상의 사진가'를 자처하였다. 안개 낀 지붕들 사이로 서로 응시하는 젊은 연인을 담은 〈바스티유의 연인 Les Amoureux de la Bastille〉(1957), 자기 키 만한 바게트 빵을 든 아이가 얼굴 가득 웃음을 띤 채 달려가는 〈작은 파리지앵 Le Petit Parisien〉(1952) 등 그의 작품은 늘 삶의 언저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의 사진이 뛰어난 점은 이처럼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기록하면서도 프랑스 특유의 미감과 서정성을 가득 담고 있으며, 삶의 풍경을 단순히 기계적으로 재생한 것이 아니라 시적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데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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